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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썬] 인연

[문썬] 인연 06

[문썬] 인연

 

 

 

 

*6화

 

 

 

미세먼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하늘. 그 아래 늘어선 초가와 기와집들. 강에선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어린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길거리엔 봇짐을 메고 걸어가는 사람들과 말을 끌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낯설지만 익숙한 이 곳을 한 바퀴 돈 시선은 이 근처에서 오래되기로는 손 꼽힐만한 큰 고목 근처에 뭉쳐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멈춰 섰다.

 

 

“그만해! 그만해!”

“너네 집 망했다며. 우리 아버지가 너네 집은 곧 망할 거라 그랬어. 이제 너랑 놀지 말랬어!”

“아니야! 우리 집 안 망했어!”

“거짓말. 우리 아버지 궁에서 엄~청 높은 사람이거든!”

“우리 아버지도...!”

“아! 누구야!”

 

 

아이들을 앞세워 한 아이를 괴롭히던 사내아이의 머리 위로 나뭇가지가 힘차게 내리쳐졌다. 사내아이는 머리를 쥐어 싸며 한껏 찡그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저리 가.”

 

 

길바닥에 떨어져있던 자기 팔만한 나뭇가지를 하나 들고 있는 또 다른 꼬마 아이. 생긴 건 여리고 귀엽게 생겼으나 입 밖으로 나오는 말투는 높낮이 없이, 어찌 보면 차가워 보이는 말투였다. 성질이 난 사내아이는 버럭 화를 내며 그 꼬마에게 달려들었지만 아이는 아주 쉽게 몸을 놀리며 쥐고 있는 나뭇가지로 재빠르게 사내아이의 머리부터 어깨, 옆구리까지 가볍게 쳐댔다.

 

 

“이씨! 너 뭐야!”

“저리 가랬잖아 그니까.”

 

 

이번엔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두 아이들도 그 꼬마에게 덤벼들었으나, 작은 나뭇가지 하나는 그들이 꼬마의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베는 칼도 아니고, 그렇다고 맞으면 상처를 내는 돌도 아닌 고작 나뭇가지 하나로 세 아이들을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제 또래의 아이를 보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아이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씨! 너, 너 나중에 봐!”

 

 

결국 나뭇가지에 몇 대를 얻어맞은 아이들은 씩씩 거리며 재빨리 고목나무에서 멀어졌다.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자 터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남은 두 아이의 거리가 좁혀들었다.

 

 

“너 왜 맞고 있어?”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아이는 통통하게 젖살이 오른 뽀얀 볼을 갖고 조금 해진 옷차림에 편한 바지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앞에서 눈을 깜빡이고 있는 아이는 벌써부터 이목구비가 예쁘게 드러난 외모가 돋보이는데다 꽤 고운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전혀 다른 느낌의 두 아이가 처음 마주치자 알 수 없는 기분이 짜릿하게 올라왔다.

 

 

“다음부턴 맞지 말고 너도 때려.”

 

 

나뭇가지를 들고 있던 아이는 자신이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앞에 있는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얼떨결에 나뭇가지를 받아든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별 말이 오가지 않자 볼일을 마친 아이가 뒤를 돌아 걸음을 뗐다. 한 걸음, 한 걸음 두 아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가자 나뭇가지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꽉 들어가며 멈춰선 아이가 멀어져가는 아이를 불렀다.

 

 

“자, 잠깐만!”

 

 

그렇게 다시, 두 아이의 눈이 마주쳤다.

 

 

“넌 누구야?”

 

 

 

*

 

 

 

잠깐 낮잠을 잔다는 게 눈을 뜨니 벌써 해가 지고도 한참이었다. 안 그래도 겨울이라 빨리 해가지는 탓에 밖도 방도 깜깜한 어둠 투성이였다.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여니 다시 맞이하는 어둠. 별이가 어디 갔나... 벽을 더듬으며 거실 불을 키고 주방을 둘러보고 별이 방을 둘러봐도 별이가 보이지 않는다. 벽에 걸린 시계는 벌써 저녁 8시를 넘기고 있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베개 옆에 놓인 폰을 들고 전화를 해보지만 계속 신호음만 갈 뿐이었다.

 

 

“익숙했던 혼자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네.”

 

 

받지 않는 전화를 툭 떨어트리고 의자에 대충 걸쳐놨던 겉옷을 챙겨 입었다.

 

 

“으, 추워.”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찬 공기에 겉옷을 더 여몄다. 깜깜해진 거리엔 가로등이 들어와 길을 비추고 있었다. 갈 데도 없는 애가 어디로 간거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 앞에 있는 자주 가던 편의점에도 안 보이고 집 근처 놀이터에도 안 보이고. 정말 어디로 간 거야, 문별이. 바닥에 얌전히 있던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찼다. 데구르르 소리를 내며 굴러간 돌멩이는 누군가의 구두와 부딪히며 탁 소리를 내며 멈췄다. 높은 구두를 타고 올라가면 겨울이란 게 무색할 정도로 드러난 커피색의 매끈한 다리에 두툼한 호피 무늬 털옷을 걸친 여자가 서있었다. 길고 뾰족한 손톱과 진한 화장. 그녀에게서 풍기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은 괜히 온몸에 긴장을 품게 할 정도였다.

 

 

“아...어...”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또각 거리는 구두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키는 나와 비슷한 것 같지만 구두 덕분에 고개를 들어야만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여기서 도대체 역으로 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코앞에 다가온 여자는 내가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 민망해질 정도로 세상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지도 어플이 켜진 스마트폰을 들고 물었다. 내가 발로 찬 돌멩이 따위는 전혀 관심 밖인 얼굴이었다.

 

 

“네...?”

“내가 길치거든요. 괜히 호기심 부리다가 이상한 데까지 걸어 들어왔네.”

 

 

여자는 길고 풍성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입술을 살짝 물었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그 모습이 어찌나 섹시해보이던지... 살며 이런 분위기를 내는 사람은 TV 속 연예인 밖에 보지 못한 터라 어딘가 신기하고 설레는 기분이었다.

 

 

“지도를 봐도 모르겠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그녀의 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 마트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가다보면 빵집 있거든요. 그 빵집 쪽으로 걸어 나가면 바로 역 보여요.”

“나 아까 그 빵집 본 거 같은데?”

“네?”

“바빠요?”

“네?”

“안 바쁘면 나 좀 데려다주면 안 돼요? 거기 빵집 나오면 사례로 빵 사줄게요.”

 

 

어렸을 때 낯선 사람은 함부로 따라가는 거 아니라고 배우긴 했지만... 나는 어느새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와 같이 걷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점점 역과 가까워진다며 신나는 목소리를 냈다.

 

 

“저기가 큰 길이에요. 양 옆에 다 지하철역 출구 있으니까 아무 데나 가시면 돼요.”

“내가 여기까지 왔었는데 진짜! 고마워요. 덕분에 덜 헤맸어요.”

 

 

여자는 빵이 한 가득 담긴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빵집에 들어가자마자 뭐 먹고 싶냐고 질문은 했지만 결국 골라 담긴 건 여자의 맘대로 선택된 빵들이었다.

 

 

“내가 좀 촉이 좋은데. 우리 다음에 또 만날 것 같은 느낌?”

“네에?”

“어쨌든. 고마웠어요! 안녕!”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자는 빠르게 제 할 말만 빠르게 던지고 골목을 벗어나 모습을 감췄다. 남겨진 빵 봉투만 멍하니 보고 있으니 잠깐 잊고 있던 추위가 느껴졌다.

 

 

“아 춥다...”

“추운데 거기서 뭐해?”

“야 문별이!”

 

 

너 어디 있었어- 줄곧 찾아다녔던 사람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다. 팔자눈썹을 하고 칭얼거리자 별이가 두 손을 내 볼에 올렸다.

 

 

“볼 차가워.”

“너 때문이잖아.”

“왜? 내가... 뭐 했어...?”

“너 없어져서 찾아 다녔잖아. 전화도 안 받고.”

“아... 미안. 나 이거 아무거나 누르다가 진동도 소리도 안 나게 돼 버렸어. 다시 소리 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별이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폰을 꺼내 내밀었다. 매일 스마트폰을 붙잡고 살았지만 아직도 서툰 것 투성이였다. 무음을 바로 해제해서 별이에게 건네주니 별이는 활짝 웃으며 다시 주머니 속으로 폰을 넣었다.

 

 

“근데 빵 먹고 싶었어?”

“어?”

 

 

별이가 들고 있는 봉투로 턱짓을 했다. 빵빵하게 가득 찬 빵 봉투를 보니 다시 떠오르는 알 수 없는 분위기의 여자.

 

 

“아니... 그냥 선물 받았어.”

“줘봐. 우와. 엄청 많네!

 

 

내가 들고 있던 봉투를 가져간 별이가 봉투를 활짝 열고 안을 기웃거렸다.

 

 

별아.

응?

나 아까 꿈꿨다.

무슨 꿈?

기억은 안 나는데 되게 재밌는 내용이었던 거 같아.

 

 

별이와 몸을 착 달라붙자 별이에게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왔다.

 

 

“추워.”

“춥지? 얼른 집 들어가자!”

 

 

별이의 팔을 꼭 잡으며 몸을 더 웅크리자 별이가 더 나를 품으로 안았다.

 

 

“별아.”

“엉?”

“순간이동 하면 안 돼...?”

“너 그거 버릇 되면 안 된 댔잖아. 운동해야지.”

“아니 내가 뭐 맨날 해달라고 그랬나.”

“추워서 해 달라, 무거워서 해 달라, 피곤해서 해 달라...”

“아아! 알았어 알았어! 엄청 뭐라 그러네!”

 

 

그거 한번 해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 심통이 나 콧방귀를 뀌며 별이의 어깨를 밀치고 앞서 걸었다. 치사해, 왕 치사. 누구 때문에 밖에 나와서 이러고 있는데.

 

 

“삐졌어...?”

“아니.”

“삐졌잖아.”

“아니라고!”

 

 

순간 머리를 흩트리는 바람이 일렁였다. 버럭 소리를 지르며 별이를 향해 뒤를 돈 순간, 나를 붙잡는 별이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의 주변을 가득 채웠던 어둠과 시끄러운 도로 위의 소음이 사라졌다. 폭신한 소파와 환하게 켜져 있는 불빛. 그리고 따뜻한 집안의 온기. 한 순간에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이 변했다. 내 눈 앞에 여전히 있는 문별이, 한 사람의 존재만 빼고.

 

소파에 앉아 있는 나. 그리고 내 얼굴 양 옆으로 뻗은 별이의 두 손. 허리를 살짝 숙여 나를 바라보는 별이의 입가엔 가벼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짠.”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며 별이가 숨겨 있던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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