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썬/휜화] 그들이 사는 세상
*8화
"감독님. 전화 왔었어요."
막 씻고 나온 용선에게 별이가 말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아 올리며 용선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폰을 들었다. 별이는 여태 놀고 온 모양인지 술에 취해 빨개진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부재중 전화 1통 정휘인. 톡 메시지 2개.
용선이 잠금 화면을 풀자 휘인에게서 온 메시지 2개가 바로 떴다.
[그]
[내일 촬영 어떻게 돼]
용선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둘 다 참 귀엽다- 그런 생각을 하며 용선이 식탁 위에 올려둔 종이들을 뒤적 거렸다.
"문별이."
"네에~?"
바닥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던 별이가 용선의 부름에 고개를 휙 돌렸다. 별이의 양 손에는 맥주 두 캔이 잡혀 있었다.
"너 내일 일촬표 가지고 있어?"
"넵! 드릴까요?"
"어. 하나만 줘봐."
별이가 바로 가방을 뒤적여 내일 촬영 일정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천천히 내일 일정을 눈으로 훑은 용선이 다시 폰을 들었다.
[3시면 될 것 같네]
[뭐야...]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확인한 휘인에게서 온 답장에 용선이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왜. 할 말 있어?"
휘인에게 마저 장소까지 보낸 용선이 폰을 들고 별이가 펴둔 이부자리로 천천히 걸어왔다. 용선이 메시지를 보내는 내내 보고 있던 모양인지 고개를 돌리자마자 마주친 눈에 별이가 급히 시선을 돌렸다.
"저, 감독님."
"왜.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저랑 맥주 한 캔씩 하실래요?"
용선의 시선이 별이가 잡고 있는 맥주 캔에 닿았다. 얼굴은 여전히 빨가면서 무슨 술이야-
"너 이미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아니에요!"
"나 술 별로 안 좋아해."
"아..."
풀이 죽은 듯 별이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용선은 그런 별이의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러더니 별이의 한 쪽 손에 잡혀 있던 맥주 캔을 낚아채듯 가져 갔다.
"어...?"
"조금은 괜찮겠지."
용선의 말에 별이의 표정이 바로 활짝 펴지기 시작했다. 곧이 곧대로 드러나는 표정을 구경하며 용선이 별이를 빤히 쳐다 보았다.
"왜, 왜요..."
"뭐가?"
"왜 그렇게 쳐다 보세요."
"그냥. 신기해서."
술 때문에 붉은지, 부끄러워서 붉은지 모를 별이는 가방 옆에 두었던 과자 봉지를 뜯어 두 사람 앞에 놓았다. 치익- 캔을 따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고 용선이 캔을 들어 별이의 캔을 부딪혔다.
"건배."
용선이 씩 웃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탄산이 목 구멍을 타고 들어갔다.
"캬아."
용선이 뜯어논 과자를 하나 입에 물었다. 별이도 벌컥 벌컥 두 모금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코를 찡긋했다.
"벌써 내일이면 지방 촬영도 끝이네요."
"그러게."
"서울 가도 이제 촬영 한 달도 안 남은 것 같던데."
"왜. 아쉬워?"
"음... 네."
별이가 실없은 웃음을 보였다.
"빨리 끝내고 싶을 줄 알았더니. 의외네."
"촬영 재밌거든요. 그리고... 감독님이랑 일하는 것도 좋고."
확실히 지금은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다만 이미 술 기운이 얼굴을 빨갛게 달여 놓아서 티가 안 날 뿐이지. 별이는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일하는 게 좋아?"
"...... 넵."
"맨날 혼나면서 뭐가 좋아?"
용선은 정말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었다. 자기가 만났던 후배들 중에 용선과 일하는 게 좋다고 한 후배가 있었던가. 아니. 부끄럽게도 없었다. 죄다 도망가기 일쑤였고 자길 무섭다고 싫다고 외쳐대던 후배들이 한 가득이었다. 문별이 저 아이는 진짜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후배들과는 항상 다른 행동과 말을 보여주는 아이였다.
"저 감독님 조...!"
별이가 급히 말을 멈췄다. 술 기운에 자기도 몰랐던 본심이 튀어 나올 뻔 했다. 저 감독님 좋아해요- 분명 말의 완성은 이거였다. 이 말이 튀어 나올 뻔 했다. 별이는 사실 한번도 용선에게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진 적이 없었다. 별이에게 용선은 존경하는 선배, 동경하는 선배였다. 좋아하는 상대는 아니었다. 근데 방금 튀어나오려고 했던 말은 뭘까. 자기도 모르게 품고 있던 말이었을까. 혼란스러운 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용선은 말을 하다 만 별이를 빤히 쳐다 보았다. 왜 갑자기 말을 하다 말지-
"조, 조금 무섭다고요!"
"어?"
별이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감독님 조금밖에 안 무서워요."
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문별이- 별이는 애꿎은 손을 괜히 꼬집었다.
"그래? 그래서 그렇게 말을 안 듣는 건가..."
"네?"
"아니. 내가 안 무서워서 아직도 그렇게 일을 제대로 못하는 거였으면. 앞으로 더 제대로 혼내야겠네."
이게 아닌데... 별이의 표정이 천천히 울상 지어 갔다.
"아니... 그게 아니라..."
"문별이."
"아니... 네?!"
"너는 왜 드라마가 하고 싶은 거야?"
용선의 질문에 별이가 생각에 잠겼다. 왜 드라마 PD가 되고 싶은 거야?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질문. 드라마 PD라는 꿈을 키우고 주변에 있는 친구들, 가족들에게 자주 듣던 질문이었다. 왜 굳이 드라마를 하고 싶나요? 그리고 방송국 면접 자리에서도 들었다. 오랜 시간 꿈꿔오고 오랜 시간 생각했던 그 질문의 답.
"제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별이의 눈이 반짝 반짝 빛났다. 꿈을 한 아름 먹은 사회초년생. 1년차 조연출이 갖고 있는 열정과 희망이 보였다. 그런 별이의 모습에서 용선은 예전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결국엔 행복해지고. 저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보고 싶은 세상.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만드는 드라마를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용선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맥주를 입으로 가져 갔다.
"그래. 그 마음 꼭 잃지 말아라."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용선이 별이를 보며 말했다. 별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감독님은요?"
"어?"
"감독님은 왜 드라마 PD가 되신 거에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문에 용선이 작게 실소를 비쳤다. 한 때는 자기도 제 앞에 앉은 별이처럼 열정과 꿈으로 똘똘 뭉쳤었는데.
"드라마가 좋아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사회인이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열정과 꿈은 잠시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가끔은 퇴색되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 자신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도 수십번, 현실에 부딪혀 실망하기도 수백번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놓지 않았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은 같았으니까. 드라마가 좋았으니까.
"감독님은 드라마가 왜-"
"안주 이거밖에 없어? 어떻게 가져와도 맛없는 과자를 가져오냐."
별이의 이어지는 질문을 차단하고 용선이 화제를 돌렸다.
"아니, 이거 맛있는데..."
"입맛이 싸구려네."
"헐 싸구려라뇨. 이거 2000원 짜리에요!"
"그래 2000원 짜리 입맛."
별이가 살짝 열이 뻗쳐 오는 듯 콧구멍과 입이 동시에 확장 되었다. 선배만 아니었으면 이미 욕하고도 남았을텐데. 별이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상스러운 말은 꾹꾹 눌러 담았다. 대신 최대한 돌리고 돌려 말을 내뱉었다.
"아니 진짜 감독님 왜이렇게 사람이 예민하고 까칠하고...!!"
차가운 용선의 시선이 별이에게 닿았다. 별이는 몇날 며칠을 봐도 용선의 저 차갑고도 매서운 눈빛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용선이 표정을 굳히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굳어 버리는 게... 쉽게 말해 완전히 쫄 수밖에 없었다.
"예쁘시다고요..."
나름 수습한다고 던진 말이었지만 여전히 용선의 표정은 펴지지 않고 있었다.
"'예쁘면 뭐해, 성격이 더러운데' 라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익숙한 말에 별이가 기억을 되감았다.
'진짜 마녀야! 그러니까 애인도 없고 후배들이 팀에도 안 들어가려고 하고 그러는거지! 분명히 모쏠일거야! 그런 사람을 누가 만나냐!'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어두워지는 별이의 표정.
'얼굴만 예쁘면 뭐해! 성격이 더러운데!'
별이가 용선의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선에게 된통 깨졌을 때. 방송국 앞에 있던 식당에서 수영과 술을 한잔 하며 용선의 욕을 신나게 퍼부었었다. 그곳에 용선이 올지도 모르고. 그 말들을 용선이 모두 들을 지도 모르고.
별이는 들고 있던 맥주를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그리고 편히 한쪽 다리를 피고 앉아 있던 자세를 꼼지락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다리를 모으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공손히 내려 놓았다.
"잘못했어요! 제발 그때 제가 말한 건 잊어주세요!"
별이가 두 손을 모아 소리쳤다. 가만히 별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용선은 삐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키며 표정 관리에 들어 갔다.
"어쩌지. 나 머리가 좋아서 한번 들은 건 다 기억 하는데."
"감독니임..."
별이가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좌절한 별이의 주변에 회색 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고개 숙인 별이를 보며 별이는 모르게 용선이 피식 웃음을 보였다.
"그럼..."
용선이 다시 맥주 한 모금을 하려는 때, 별이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무슨 다짐을 한 모양인지 꽤나 결연한 얼굴이었다.
"지금 하는 말로 다시 기억해주세요."
용선은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모금을 들이켰다.
"감독님 진짜 천사같-"
"푸으으!!"
용선이 마시던 맥주를 뿜어 버렸다. 별이의 옷뿐 아니라 얼굴까지 튀어 버린 맥주에 놀란 용선의 눈이 동그래졌다. 용선의 턱을 타고 흐르는 맥주가 뚝- 바닥에 떨어지자 별이가 꼭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미, 미안."
용선이 당황하며 급히 욕실로 들어가 수건을 꺼내 왔다. 아까 그 상태 그대로 앉아 굳어 있는 별이를 보며 용선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별이의 옆에 쪼그려 앉아 별이의 얼굴을 천천히 닦아 주었다.
"왜 말같지도 않은 말을 해가지고..."
별이가 마녀의 반대말로 내뱉은 천사라는 단어에 용선은 너무나도 놀랐었다. 어이가 없었다. 별이가 아부를 목적으로 그 단어를 썼든, 진심으로 썼든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였다. 더더욱 방송국에 들어와선 절대 들을 수 없는 단어였다. 용선은 아주 아주 유명한 '마녀'였으니까. 후배들이 무서워 도망친다는 전설의 마녀.
대강 물기를 닦은 용선은 별이의 무릎에 수건을 살포시 내려 놓았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별이의 눈치를 살피며 앉았다.
별이의 눈은 퀭했다. 살며 누가 제 얼굴에 뭔가를 뱉은 적이 없는데. 아니 이런 경험을 하는 자체가 흔치가 않은데. 별이는 화도 나지 않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그냥 멍했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자야겠다!"
용선이 눈치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난감한 이 순간을 빨리 보내려 어색한 연기톤의 말투로 용선이 말을 내뱉었다.
"잠깐만요."
"어?"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
뭐야. 더 하려고? 더? 무슨 말을? 이 꼴을 당하고도? 당황한 용선이 무어라 말은 못하고 입술만 축이며 별이를 쳐다보았다.
"이번엔 뿜으시면 안 돼요. 침도 뱉으면 안 돼요!"
용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 별이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감독님 진짜 천사같아요. 완전 프로페셔널하고 예쁘고 멋있고 귀엽고... 성격이 조금 까칠해서 그렇지 원래는 진짜 좋은 사람이고... 그러니까... 어 그러니까... 인기도 많을 거고..."
점점 할 말이 떨어지는 모양인지 얼버무리기 시작한 별이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누구라도 감독님 좋아할 거에요."
말을 마친 별이가 말똥히 용선을 바라보았다. 용선은 혹시라도 아까 천사라는 단어보다 더 듣기 힘든 말이 나오면 어쩌나, 한껏 긴장한 상태로 별이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너..."
별이의 입이 다물어지고 조용한 적막이 돌자 용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술마시면 안 되겠다."
별이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너 내일 오늘 있었던 일 다 기억나면 쪽팔려서 맨날 이불킥 할껄?"
용선이 자기가 마시던 맥주 캔을 별이 앞으로 쭉 밀었다.
"내꺼까지 다 먹고 자. 그냥 필름 끊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후배님."
*
길고도 짧았던 남해에서의 촬영 마지막 날이 밝았다. 별이는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 잡고 잠에서 깼다. 이미 용선은 나갔는 지 방은 고요했다. 별이는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뭐야...?"
욕실로 들어가려던 별이가 식탁에 올려진 숙취해소제를 발견하고 방향을 돌렸다. 물 한 컵과 나란히 놓여진 숙취해소제 말고는 어떤 쪽지같은 것도 없던 터라 별이는 이 물건의 정체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감독님껀가. 그러기에 다 새건데. 물도 차있고. 그럼 내껀가?
그 순간, 별이의 머릿속에 잠시 꺼져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젯밤의 그 기억들이 모두 떠올랐다. 용선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숙소 앞 마트에서 캔 맥주와 과자를 사들고 왔었고. 용선과 같이 술을 마셨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에 자기가 내뱉었던 말에 대해 사죄를 하고. 그리고...
"헐."
별이는 그 자리에서 흘러 내리듯 주저 앉았다.
'그냥 필름 끊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후배님.'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자길 보던 용선의 얼굴이 떠올랐다. 별이는 두 손으로 벌어지는 입을 막았다.
"아악! 미쳤어!!"
*
'100m 앞에서 좌회전 입니다.'
휘인은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차를 몰았다. 살짝 열어놓은 창문을 넘어 남해의 바람이 들어 왔다. 자동차에 달려 있는 전자 시계는 오후 2시 40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차가 완전히 멈추고 휘인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웠다.
"하아. 미쳤어 정휘인."
좌석에 기대 앉은 휘인이 오른손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
휘인이 주차한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선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혜진의 단독 씬에 앞서 지웅과의 씬이 한창이었다.
"컷. OK. 좋았어요. 다음 컷 바로 갈께요."
용선의 말에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카메라 위치를 살짝 바꾸고 반사판 역시 다시 바로 세팅에 들어 갔다. 곧 모두가 조용해지며 준비를 마치자 모니터로 시선을 집중한 용선이 큐싸인을 내렸다.
"액션."
체크해 놓은 아웃점에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지연(혜진). 지연이 마킹된 위치에 멈춰서 현수(지웅)를 바라본다.
"안녕. 잘 지냈어?"
현수의 대사. 오랜만에 만난 옛 연인을 바라보는 지연의 얼굴은 복잡미묘하다. 울음을 참으려는 듯 지연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오랜만이야, 지연아."
다시 현수의 대사.
그리고 힘겹게 떨어지는 지연의 입.
"보..."
뭐야. 안혜진. 시선을 어디다 두는 거야- 모니터를 바라 보고 있던 용선의 미간이 구겨졌다. 지웅을 바라 보고 있어야 할 혜진의 시선이 지웅을 넘어 섰다. 그리고 멈춰 버린 대사. 촬영 감독과 지웅 모두 혜진의 다음 대사 혹은 용선의 컷 싸인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용선은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 대사와 함께 멈춰 버린 혜진을 보았다. 역시나, 혜진의 시선은 지웅을 향하지 않고 있었다. 용선은 혜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뒤로 돌렸다. 푹 눌러 쓴 모자 아래의 두 눈과 마주친 용선. 혜진의 시선 끝엔 휘인이 있었다. 용선이 슬쩍 손목 시계를 확인 했다. 정확히 오후 3시였다. 용선이 휘인에게서 다시 시선을 떼고 혜진을 보았다.
끊긴 끊어야겠지. 용선이 컷 싸인을 내리기 위해 허리를 폈다.
"커..."
"보고 싶었어."
굳게 닫혀 있던 혜진의 입이 열렸다. 혜진이 내뱉은 말은 올바른 대사였다. 하지만 그 대사의 주인공은 지연이 아니었다. 혜진이었다. 그리고 혜진의 상대 역시, 현수가 아닌 휘인이었다.
혜진과 휘인, 두 사람의 눈이 서로에게 고정된 채 용선의 컷 싸인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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