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썬휜화] 그들이 사는 세상

[문썬/휜화] 그들이 사는 세상 25

백뚠 2019. 4. 29. 17:10

[문썬/휜화] 그들이 사는 세상

 

 

 

 

 

*25화

 

 

 

휘인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식당 안 어디에서도 혜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휘인은 2층부터 1층까지. 그리고 그 식당 주변까지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혜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입이 마른 휘인은 근처에 있던 수영에게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혜진씨 어디 갔어요?"

"좀 전에 가셨는데. 내일 스케줄 있으시다고."

 

 

갔다고? 이렇게? 입술을 질겅질겅 물던 휘인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긴 신호음만 들릴 뿐이었다. 다시. 그리고 다시. 휘인은 몇 번을 그렇게 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폰을 들고 있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휘인은 별 하나 떠있지 않은 깜깜한 밤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어떤 빛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에 물든 하늘은 꼭 자기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때, 아무런 소식도 없던 휘인의 폰이 작은 진동을 울렸다.

 

 

[나 집이야]

 

 

혜진에게서 온 문자 한 통에 휘인은 빠르게 도로변으로 뛰어가 제일 먼저 오는 택시를 잡아 올라탔다.

 

 

 

*

 

 

 

빨간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 앞. 사차선의 도로엔 많은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용선은 지나가는 차들로 가려졌다 보여졌다하는 붉은 빛의 신호등만 주시하고 있었다.

 

 

"실망 안 했어요."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말을 해야 용선이 슬퍼하지 않을까. 용선의 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생각에 잠겨있던 별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앞으로 향해 있던 몸을 살짝 틀어 별이가 용선을 바라봤다.

 

 

"나 원래 할 얘기 따로 있었는데. 오늘은 안 되겠네."

 

 

용선을 보는 별이가 씩 웃음을 지었다.

 

 

"선배. 나한테 처음으로 솔직했던 거 알아요?"

 

 

신호등의 빨간 빛이 초록 빛으로 바뀌었다. 용선은 별이의 시선을 마주하기 위해 별이처럼 몸을 틀었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길을 건넜고 빠르게 지나가던 차들이 멈춰섰다.

 

 

"선배는 선배 속 마음 얘기 잘 안 하잖아요."

 

 

함께 하는 시간동안 별이는 용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겉으로 보면 정말 강하고 흐트럼 없는 사람이지만 그건 속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별이는 이제 알고 있었다. 드라마 하나를 책임지는 감독이니까. 후배들을 이끄는 선배니까. 힘들단 말, 슬프단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던 사람. 그러나 그 속에선 혼자 싸우고 있었던 사람.

 

 

"누군가의 삶은 해피엔딩이고 또 누군가의 삶은 새드엔딩이고. 누구는 이팔청춘 아름다운 드라마를 찍는데 누구는 신파를 찍고. 내용이 다르고 결말이 달라도 우리 삶은 다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전."

"문별이다운 말이네."

"제가 생각하는 드라마는요, 여전히 똑같아요."

 

 

신호등의 초록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길을 건너던 사람들은 모두 건너가고 차 안에 있는 운전자들은 출발 준비를 했다. 그렇게 다시 빨간 신호등이 되자 멈춰있던 차들이 움직이며 속도를 높였다.

 

 

"도망가고 싶다고 말하는 선배마저도요."

 

 

두려움은 누구나 생긴다. 모든 사람들은 속에 두려움을 품고 산다. 사람들은 그 감정에 겁을 내 도망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용선을 짓누르는 두려움은 역설적이게도 꿈에서 나왔다. 바라는 꿈이, 하고 싶은 꿈이 현실을 살아가며 자꾸만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용선에겐 도피처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도피처는 또 다시 역설적이게도 꿈이었다. 꿈 때문에 두려움이 생겼으면서 결국 꿈으로 도망갔다.

 

 

"선배니까요."

 

 

바람에 흩날린 용선의 머리 위로 별이가 손을 뻗었다.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머리를 정돈해주며 별이가 눈을 맞췄다. 도망은 갔을지언정 지지는 않았다. 별이가 봐온 용선은 그랬다. 속으론 무서워하고 있었든, 그래서 어딘가로 도망갔든. 별이가 보는 용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상처가 많이 나고 지쳐있지만 무너져있지 않았다. 항상 지지 않고 싸웠으니까.

 

시선을 떨어트린 용선을 보며 별이가 앞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다시 켜질 초록불을 기다리며 용선의 손을 잡았다.

 

 

 

*

 

 

 

휘인이 초인종을 누르고 얼마 되지 않아 문 안쪽에서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소리만 날뿐 여전히 굳게 닫힌 문에 휘인은 천천히 손을 뻗어 문을 잡아 당겼다. 문이 열리며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현관 바닥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바닥 끝에 서있는 두 발. 현관의 길이만큼이나 떨어져있는 혜진이 팔짱을 끼고 휘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휘인이 안으로 들어오고 문이 닫히자, 자동으로 문이 잠겼다. 문 바로 앞에 서있는 휘인은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서서 혜진과 똑같이 혜진을 바라보았다.

 

 

"우리... 얘기 좀 하자."

 

 

무겁고 무서운 정적 끝에 휘인이 겨우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나는 할 얘기가 없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일꺼야. 그러니까..."

 

 

휘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 이렇게 떨린 걸까. 왜 이렇게 말 한 마디 꺼내기도 힘든 걸까. 휘인은 흐릿해질 것 같은 정신을 겨우 잡았다.

 

 

"해."

 

 

혜진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오레오랑 너... 아무 사이 아니지?"

 

 

휘인의 질문에 혜진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혜진은 한껏 인상 써진 얼굴로 휘인을 노려보았다.

 

 

"그걸 왜 묻는데? 아니라고 했잖아. 이젠 내 말도 못 믿는 지경인거야? 아니면 시비 걸고 싶어서 온거야?"

 

 

휘인의 입술 뿐 아니라 손마저 작은 떨림을 보였다. 손가락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떨리자 휘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얘기하고 싶어서 온거야. 그리고 방금 질문은... 아니라는 대답 듣고 싶어서 한거야."

 

 

혜진은 입을 다물었다. 혜진의 눈에 겁에 가득 질려 있는 휘인이 담겼다. 저렇게 달달 떨며 자기 앞에 서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왜... 그랬어...?"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숨을 내쉬던 휘인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혜진은 여전히 찡그린 미간으로 휘인을 바라보았다.

 

 

"뭘?"

"그 때 말이야."

 

 

휘인이 자기 입으로 처음으로 꺼내는 주제였다. 휘인이 꺼낸 주제는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계기. 그 시기 그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미동도 없이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혜진은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풀어 내렸다.

 

 

"그걸 왜 지금 와서 물어?"

"......"

"그건 그 때 물어봤어야지. 지금 물어보면 뭐가 달라져?"

 

 

휘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싫었던 거야?"

"정휘인."

"묻잖아. 내가 싫었어? 날 사랑하지 않았던거야?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왜!"

 

 

금방이라도 울듯한 얼굴로 소리치는 휘인의 낯선 모습에 혜진은 애써 놀란 기색을 숨겼다. 언제나 이성적이었던 휘인이 모든 이성을 던져버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던 말처럼 휘인은 오늘 이 순간 모든 걸 털어낼 목적이었다. 나를 두고 다른 사람을 만났던 너에게 그 때도 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하지 못했던 말을. 듣는 너의 입장에선 짜증나고 어이없겠지만, 오늘은 그냥 이기적이고 생각 없는 사람이 되어 말하기로.

 

 

"왜 그랬어...? 나는 그때도 지금도 모르겠어."

 

 

휘인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나도 묻고 싶어."

 

 

듣고 있던 혜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는 왜 그랬어? 너 정말 나 사랑한거 맞아?"

 

 

혜진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휘인이 당황한 얼굴이 되어 몸을 바르르 떨었다.

 

 

"나는 널 항상... 사랑했어."

"나도 니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여전히 두 사람의 거리는 한 걸음도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혜진은 혼란스러워하는 휘인과 달리 차분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넌 먼저 나한테 사랑한다고도 하지 않았고, 먼저 나한테 다가오지도 않았어. 매번 너한테 다가가는 건 나였어. 너는... 내가 안아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날 품지도 않았어. 3년 동안 계속 말이야."

"나는..."

"처음엔 그게 배려인 줄 알았지. 니가 날 너무 사랑해서 그런가보다. 근데 말이야 시간이 지나니까 헷갈리더라.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게 맞을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반응이 없고, 날 먼저 잡아주지도 않는 사람이 정말 날 사랑하는 게 맞을까?"

 

 

혜진의 촉촉한 눈은 슬픔을 담고 있었다. 휘인은 혜진의 눈에서 묻어나는 그때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니가 날 사랑했다고? 그러면 우린 그냥 맞지 않았던거야.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거지. 너한테서 난 사랑을 못 느꼈으니까. 우리 이런 대화 하는 거 처음인 건 알아? 항상 불만 있는 건 나였잖아. 그래서 맨날 나 혼자 너 붙잡고 일방적으로 얘기했지. 넌 그때 어땠는지 기억해? 아무 말도 안 했어. 아무 말도."

 

 

휘인은 뒤에 있는 문을 한 손으로 잡아 기댔다. 차가운 문의 온도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래서 궁금하더라.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달라질까."

 

 

속에 있던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살아온 건 휘인 뿐만이 아니었다. 혜진도 속에 담은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꺼내고 싶었지만 꺼낼 수 없었던. 그러나 너무 꺼내고 싶었던 이야기.

 

 

"적어도 둘 중에 하나는 달라질 줄 알았어. 니가 나한테 화를 내거나 적어도 이렇게 묻기라도 하거나. 아니면 내가 나랑 너무 다른 너한테서 마음을 접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거나 말이야."

 

 

말을 하던 혜진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공기가 빠지는 헛웃음과 함께 혜진이 말을 이었다.

 

 

"근데 달라지는 건 없더라. 하나도."

 

 

혜진은 허무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휘인의 고개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나는 무서웠어."

 

 

어느새 잠겨버린 휘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혜진은 돌렸던 고개를 다시 바로해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는 휘인을 보았다.

 

 

"나한테 너는 다 처음이었어."

 

 

머리카락이 가린 휘인의 눈동자가 조금씩 젖어들었다.

 

 

"그래서 몰랐어. 아니. 이게 맞는 줄 알았어."

 

 

휘인은 손톱으로 제 손을 꾹꾹 눌렀다. 부드러운 맨 살에 손톱이 닿을 수록 그 자국이 선명해졌다.

 

 

"너한테 화를 내면... 내 고집만 부리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나한테서 도망가면 어쩌지..."

 

 

휘인은 아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도 그래. 니가 날 정말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할까봐. 묻지도 못했어."

 

 

휘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드러난 휘인의 얼굴을 봤을 때, 혜진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보는 표정이었다. 아주 괴로워하는, 아주 겁에 질린 얼굴. 거기에 억지로 지어진 미소는 휘인의 모습을 더 안쓰럽게 만들었다.

 

 

"내가 잘못했어."

 

 

휘인의 사과에 혜진이 눈썹을 움찔거렸다.

 

 

"내가 사과하는 거, 니가 싫어하는 거 알아."

 

 

혜진은 침을 한번 삼켰다.

 

 

"근데 왜 난 할 말이 항상 이런 거밖에 없지."

 

 

화려한 필력을 자랑했던 작가 정휘인은 여기 없었다. 정리되지 않고 단순한, 어린 아이 같이 서툰 말을 내뱉는 정휘인만 있을 뿐이었다.

 

 

"이제와서 이러는 이유는 뭐야?"

 

 

처음 보는 휘인의 모습에 혜진은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처음 보는 그 표정을 봤을 땐 달려가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아니라고, 이제 정말 끝이라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던 혜진은 솟구치는 그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 

 

 

"너 지금 되게 이기적인거 알아?"

 

 

혜진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드라마도 그래. 지연이가 니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공사 구분 하라고 한 건 너였어. 근데 지금 뭐하자는거야? 그러면 내가 널 이해해 줄줄 알았어?"

 

 

휘인은 대답없이 혜진의 눈을 마주봤다. 혜진은 숨을 한번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알아. 나도 이기적인거. 나도 너한테 나쁜 짓 했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갑자기 울컥 올라오는 감정에 혜진이 급히 말을 멈췄다.

 

 

"이해해달라고 안 해. 그냥... 말한거야. 내가 멍청해서 못했던 말을 지연이를 통해서 한 것 뿐이야."

 

 

휘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익숙한 정적이 또 한번 두 사람 사이를 가르더니 혜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똑같아. 그때나 지금이나 널 좋아하니까."

"어?"

"지연이가 현수 다시 만났을 때 했던 대사 말이야."

"아..."

 

 

혜진이 발을 끌었다. 바닥에 끌리는 실내화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잠깐 깨웠다.

 

 

"기다려. 내가 갈께. 이건 마지막 대사지?"

 

 

혜진의 물음에 휘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결말은 뭐였어? 마지막화 줬다 뺏어갔다고 들었는데."

"재회. 그리고 아주 쿨한 이별."

"왜 바꿨어?"

"그때 넌 미련이 있었으니까. 쿨한 이별을 그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 쿨한 이별. 니가 바랐던 거야?"

"아니. 혹시라도 좋은 이별 선물이 될까 했거든."

 

 

휘인이 쓸쓸하게 미소를 보였다.

 

 

"지금 결말은?"

"재회. 그리고 긍정적 희망이 있는 열린 결말... 미련도 털어낸 너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결말이니까."

"차라리 이별 선물을 주지 그랬어.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데."

"내가 아직... 널 사랑하니까."

 

 

혜진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휘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혜진을 보며 조바심을 느꼈다. 모든 걸 털어 놓는 휘인의 마음엔 다시 혜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할 말 다 끝났어?"

 

 

정말 끝인걸까. 너무 늦은걸까. 흔들림없는 혜진의 얼굴을 보며 휘인은 올라오는 감정을 꾹꾹 눌렀다.

 

 

"이제 그럼 가줄래? 나 내일 아침부터 스케줄있거든."

 

 

혜진은 미련없는 사람처럼 돌아섰다. 혜진의 모습이 사라지고 방 문을 여는 소리, 그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휘인은 조금씩 거친 숨소리를 내었다. 아무도 없는 현관, 휘인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몸은 바르르 떨리고 뜨거운 눈물은 쉴새없이 흘렀다. 휘인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며 새어나올 소리를 삼켰다. 두 눈은 금세 빨개졌다. 주저 앉아 눈물을 쏟아 내고 있는 휘인의 모습은 마치 엄마를 잃어 버린 어린 아이 같았다.

 

 

"끄윽."

 

 

삼키고 있던 울음 소리가 조금씩 삐져 나왔다. 끄윽, 끅. 큰 소리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채 그렇게.

 

방문에 기대고 서있던 혜진이 다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한참이 지난 시간이 흐른 뒤였다.